
개개인의 욕망 사이에는 힘들의 긴장감이 있다. 나는 이것을 미시적인 관점에서부터 거시적인 관점까지의 스펙트럼을 다루고자 한다. 현재의 문명은 경쟁구조를 동력 삼아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개인의 내밀한 감정에서부터 집단화된 국가까지. 무엇을 채우려는 인간의 작위를 풍자적으로 웃어넘기며, 존재의 순환을 꿈꾼다.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힘과 힘 사이의 장력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환하여 가시적 언어로 드러내고자 했다.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나의 욕망과 나를 둘러싼 세상의 욕망을 담고 싶다. 한국 역사와 전통을 현대적인 언어로 치환하여, 인권, 문화, 세계적인 힘의 불균형에 대해 표현한다. 사회에 대한 시각을 개인사를 섞어, 우리가 넘겨짚곤 하는 감정적 진실에 의문을 던지면서도 정서적 위안을 보낸다.
Within individual desires, there lies tension. The world, through its competitive structure, serves as a catalyst for human cravings.
My work addresses the full spectrum of these forces, from macroscopic perspectives to microscopic details. I observe the world transparently, projecting my personal aspirations upon the environment that envelops me.
Bearing the fabric of traditional Korean clothing, and the marks of a struggle, the hands in paintings are colorful testaments to reunion celebrations. But they are also spectacular displays of dramatic duplicity. Uneasy embraces across history and geography, they hint at the painful reality of unending separation, clutching at fleeting and bittersweet happiness. Other paintings feature fighting politicians, their faces comically contorted. Are their exaggerated expressions real? Or are they merely playing, posing for the cameras, for us?
By augmenting Korean history and traditions with my specific visual vocabulary, I interrogate inequalities not limited to human rights, cultural capital, and global power. Intertwining my personal story with that of society at large, my images lend emotional comfort, while questioning the veracity of what we pass on.
Review
갤러리 시선 3년, 84명의 작가들
ISBN 978-89-98840-04-4
김정희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2021.12. 1
상하나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패턴과 그것을 표현한 다채로운 색, 그리고 원 형태 속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에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는 만화경 속 이미지가 연상된다. 만화경 안에서는 색종이 조각들이 정삼각기둥 모양으로 연결된 서울에 비치고, 비친 이미지가 다른 쪽 거울에 비치는 현상이 반복됨으로써 이미지가 계속 바뀐다.1) 이 기구의 한자어 표현인 만화경(萬華鏡)에는 이러한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반면 이 기구의 영어 명칭인 kaleidoscope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가져온 세 단어로 만든 단어로, “아름다운 형태의 관찰”을 뜻한다. 2) 즉 기구가 발명되고, 명칭이 만들어져 사용되는 맥락으로 보면 영어권과 유럽권에서는 이 기구를 통해 보게 되는 아름다운 형태와 그것의 과학적, 심미적 관찰이라는 행동이 강조되었다. 만화경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거울 속에 비친 것과 그것을 다른 거울들이 계속 되받아 비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보는 것은 색종이 조각이라는 물질, 즉 실체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이미지이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이미지와 제목을 통해서, 그리고 의미상으로도 이러한 만화경과 연결된다. 작품에는 대상을 추측할 수 있는 것과 주제를 추상적인 표현한 것이 섞여 있다. <Call my luck>는 전자에 속하는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놓인 육지를 사이에 두고 있는 푸른 바다와 하늘 이미지를 보여준다. <쉬고있은 태양>도 실제 자연처럼 녹색조로 그려졌다. 그러나 원 형태의 밖은 꽃과 나무를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묘사했지만, 원 안에는 화면 중앙에 놓인 축과 연결된 16개의 날개를 가진 프로펠러를 그려 대상의 이미지를 파편화해 추상적 이미지로 만들었다. 만화경 속의 이미지와 닮게 그리면서 실제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차이를 질문하기보다는, 보이는 이미지에서 개인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이미지를 단어나 용어를 제목을 붙여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추상적인 작품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유토피아>와 <Façade>는 16개의 꽃잎 같은 형태가 화면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향해 펼쳐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서는 원의 바깥 부분에서 대상성이 사라지면서 추상적인 화면이 됨으로써, 기법 상으로는 진전되었다. 유토피아란, 알다시피 토마스 모어(Sir Thomas More)가 1516년 고대 그리스어 “없다”는 뜻하는 ou(우)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τόπος)를 가져와 합성한 단어로, 그 의미는 “없는 장소”이다. 김작가가 표현한 “허상”으로 번역한 Façade는 겉모습, 정면 등을 뜻한다. 작품 중 색이 가장 다채롭고 밝은 작품에 <유토피아>,<Façade>라는 제목을 붙였다. “없는 장소”라는 개념에는 <루앙 대성당> 연작으로 성당의 파사드(Façade)를 30번 이상 다른 모습으로 그린 것이 보여 주듯이, Façade(겉모습)개념에는 “변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즉 이러한 이미지와 제목의 결합에는 유토피아도 겉모습도 모두, 만화경의 이미지처럼, 실체도 아니고 변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Yong-Nicholas Kim
2015.6. 5
If our eyes are the mirrors to our souls, then our hands are our connection to the world. Swiping a smartphone, putting food in our mouths, or opening a door, our hands turn our thoughts into reality. They can also reveal our labor, our relationships, and possibly, our potential for a long and happy life.
Bearing the fabric of traditional Korean clothing, and the marks of a struggle, the hands in Suhyun Kim’s paintings are colorful testaments to reunion celebrations. But they are also spectacular displays of dramatic duplicity. Uneasy embraces across history and geography, they hint at the painful reality of unending separation, clutching at fleeting and bittersweet happiness. Other paintings feature fighting politicians, their faces comically contorted. Are their exaggerated expressions real? Or are they merely playing, posing for the cameras, for us?
Painting within a discourse of social analysis, a process of clipping media images, and classifying her subjects, Suhyun Kim challenges our sense of emotional honesty. Her images debate accountability and guilt, forcing us to question our complicity. Like photographs as witnesses to personal stories, her paintings depict individuals as universal archetypes, simultaneously complex and simple, like each of us.
우리의 눈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손은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다. 스마트 폰을 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문을 열때, 손은 우리의 생각이 현실이 되게 해준다. 손은 우리의 노동과 인간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며, 우리가 얼마나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난한 삶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작품 속 손들은 한국전통의상과 함께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풍부한 색채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손들은 화려한 화면과 달리 이중성을 띤다. 한국의 역사와 지리적 배경을 담고있는 그것들은 평범해 보이는 도시에 내재돼있는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현실을 암시한다. 마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행복을 움켜 잡으려는 개개인의 인생과 닮았다. 다른 작품에서는 정치인들의 싸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익살스럽게 왜곡돼있다. 이렇게 과장된 표현은 진실일까, 아니면 장난이거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한 것일까?
사회에 대한 시각, 매스미디어 이미지의 차용, 그리고 작가의 개인사를 섞어 작업하는 김수현은 우리가 넘겨짚곤하는 감정적 진실에 의문을 던진다. 또한 사회적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책임의식과 죄의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녀의 작업은 개인의 인생사를 목격한 것 같이 생생하면서도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우리네 삶 같다.
이선영 평론가
2012.12. 20
몸의 확장 / 김수현의 작품은 인체를 주먹밥 모양으로 뭉치거나 데칼코마니처럼 대칭형으로 펼친 풍경(bodyscape)을 보여준다. 꼭 인체의 곡선과 산등성이의 선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풍경은 늘 인간을 떠오르게 하며, 인간에게도 풍경이 발견되곤 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인간과 인간을 합쳐지게 하는 힘, 밀치게 하는 힘 등이 작동한다. 이 힘은 생물학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인간을 뭉치게 하는 힘은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힘(권력)은 양가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남녀가 엉켜있는 포르노그래프 같은 이미지는 외설적이기도 하고 유희적이기도 하다. 작품 속 인간들은 뭉쳐진 상태이지만 각각의 색을 유지한다. 개별적 단수로 존재하는 개인들을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은 견고한 덩어리라기보다는 일시적 집합체이며, 다르게 작동하는 힘에 의해 다른 개체들과 또 다른 일시적 하나를 이룰 원소처럼 보인다. 다소 장식적으로 보이는 색깔들이 하나 속 다수를 강조한다. 대칭적으로 펼쳐진 인체 이미지는 무성생식의 이미지가 있다. 차이의 만남이 아니라, 동일증식 집단을 이루는 인간들은 코드처럼 복제된다. 기계의 법칙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기괴한 느낌이 든다. 기괴함은 병적이면서도 경이롭다. 가령 데칼코마니 같은 신체 이미지는 선천성 기형의 하나인 이중체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야누스 같은 지혜의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